지구의 기후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 폭염, 홍수, 산불 같은 기후 재난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도시를 고정된 공간이 아닌 ‘유동적인 생명체’처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래의 도시는 고정된 건축물과 인프라를 넘어, 필요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거나 형태를 조정하는 능동적인 구조로 진화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유동형 도시 인프라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 현재 어떤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기후 변화에 맞서 움직이는 도시 – 가능성의 문을 열다
기존의 도시는 기후 조건을 견디는 구조물로 설계되었습니다. 높은 방수 성능, 냉방 시스템, 튼튼한 내진 설계 등은 기후의 공격을 견디는 수동적인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이상 기후가 반복되며 이러한 방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래 도시 인프라는 ‘적응’에서 나아가 ‘이동’과 ‘변형’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수면 위에 떠 있는 주택 단지가 개발되고 있으며, 바다 위에서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병원이나 학교도 구상 중입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 일부 지역에서는 계절별 기후 변화에 따라 이동 가능한 모듈형 주택도 실험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동형 인프라는 단순한 건축 기술의 발전을 넘어, 도시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상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극단적인 더위나 홍수, 혹한이 닥쳤을 때 건물이나 시설이 물리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기능을 바꾸어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완전히 새로운 거주 방식의 문을 여는 일일 것입니다.
도시를 재정의하다 – 유동성과 디지털 기술의 결합
도시가 유동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건축 자재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센서, 데이터,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의 접목이 필수적입니다. 유동형 인프라는 기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자동으로 반응하거나 이동하는 구조를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도로에 내장된 스마트 센서가 폭우를 감지하면 그 지역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자동으로 배수 펌프가 작동하는 도시 인프라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모듈형 구조물들이 블록처럼 조립되고 해체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도시 공간은 고정되지 않은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 플랫폼은 시간대나 계절, 재난 경보 수준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며, 필요 시 다른 지역으로 이식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재난 발생 시에는 평소 공원이었던 공간이 단시간 내에 임시 대피소로 전환되거나, 상업 공간이 의료 시설로 전환되는 형태도 가능합니다. 이는 도시의 본질을 ‘고정된 장소’에서 ‘유동적인 기능 집합체’로 재정의하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도시와 인간의 관계를 바꾸게 됩니다. 도시는 더 이상 인간이 정착하는 수동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대응하는 능동적인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이동성의 윤리와 비용 – 누가 유동형 도시를 누릴 수 있는가?
하지만 유동형 인프라가 곧바로 모두에게 공평한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동할 수 있는 건축물이나 자가 조정형 인프라의 개발과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르며,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만큼 일부 국가나 계층에만 국한될 위험도 존재합니다.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대체로 저소득 국가나 사회적 취약 계층에 집중되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적 해법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됩니다.
또한 도시에 ‘이동’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 인간의 정착성과 공동체 개념 자체가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동 가능한 학교나 병원, 주택은 유연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장기적 관계망이나 정체성 형성에는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은 물리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지만, 감정적 안정성과 공동체적 유대를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동형 도시 인프라는 단지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윤리적, 사회적 합의를 동반해야만 비로소 지속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도시를 바꾸는 속도만큼, 인간 사회가 그에 걸맞은 철학과 제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유동형 도시 인프라 시대를 준비하며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들
- 유동형 인프라는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인 진화 방향으로, 이미 일부 도시에서는 실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 스마트 센서, AI, 모듈형 건축 등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은 유동성 구현의 핵심 요소이며, 도시를 ‘고정된 장소’가 아닌 ‘기능적 플랫폼’으로 전환시킨다.
- 유동성은 기술적 편익을 넘어서 윤리적·사회적 논의를 필요로 하며, 자원의 불균형과 공동체 해체에 대한 우려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이동하는 도시 개념은 환경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인간관계 재구성 문제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담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
- 도시 인프라의 유동성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재설계하는 과정이며, 이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제도적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